진주의 먼 훗날의 추억

충청도산행

향적산( 574m) 노성산( 348m) 2120년~3월~4일~목요일~날씨~흐림~~코스`무상사주차장~물탕~싸리재~전망바위~향적산~상여바위~향국사~무상사

jnju22 2021. 3. 5. 20:35

가까운 곳으로 나서본다 

계룡시에  위치한  산으로 나즉막하지만  정상에서 보는 조망은  계룡산 정상능선이 조망되고  대둔산 운장산등도 조망이 되는데   

흐린날이라  아무것도 보이지않는다

살방으로  여유롭게 즐기자~

 

임도길을 쭉욱 올라간다

여기서우측 길로 간다

조금오르면서 돌아보니 계룡산 관음봉이 보인다

뒤로  계룡산산야가  조망되고

 

산행중에  항상 안전이 우선이다  이런일이 있어나 보다 이곳에서~  

진행해야할 능선을 담아보고

향적산 정상을 돌아보고

상여바위라 한다

향국사방향 으로  쭉~ 욱내려간다

향국사  조그만 사찰이다

여기서 향한리로 간다  

임도길에서 담아본 향적산 능선  상여바위가 웅장하게 보이고~

버스로 40분정도 이동한다  논산  노성산~

이런 길을  한참을 오른다

이계단만 오르면  노성산 정상 이다

노성산 정상 에서 계룡산이 조망되다

우측이  오전에 다녀온 향적산이다

애향탑  방향 으로 하산한다

권리사는 공자가 자란 마을 에서 나온 명칭이다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곳인데 우리나라에는 강릉 제천 화성 노성에 있었는데

지금은 화성과 노성 등에만 남아있다

숙종 1716년 노성 이구산에 세워다

건립추진은 송시열 선생이 하고 그 제자들이 건립하였다

영정은 중국으로 가는 사신편에 가져오고 그외 송조 5현도 함께 모시고있다

향교에 비슷하나 명륜당 대신에 강당을로 현통당이 있고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는 대성전 대신에 궐리사가있다

조선시대 사당으로 남아있다

1978년 충청남도 기념물 20호로 지정되어있다

우리나라2대 궐리사로 조선시대 사당형식을 잘 보여주고있다

봄 가을 두벙 유림들이 제사을 모시는 행사을 한다  (춘향제)

노성면  교촌리에 있다

 

 

충남 논산시 노성면 가곡리 송당리와 상월면 신총리  월오리에걸처있는 산

 

논산 명재고택은 조선후기 숙종 대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안채와 사랑채가 문화재로 지정 되어있다

멸실되어던 사당은  1983년복원하여으며 수 차례에 걸처 안채  사랑채 및 담장 석축 연지 등을 

수 정비하여 현재에 이르고있다

1984년 문화재 지정당시 윤증 선생 고택이라  하여으나 2007년 1월 윤증 선생의 호을 따라 

논산 명재 고택으로 명칭을 변경하여다

논산 명재고택은  이산이라고도 불리는 노성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산줄기의 

남사면을 배경으로 남향으로 자리잡아으며

집 전체의 평면 구성형태는 ㄷ  자의 안채와 ㅡ 의 사랑채가 조합을 이룬 ㅁ자형 집으로

사당은 가옥의 뒤편 동쪽에 경샂지와 복원하여 별도의 공간으로 배치하여다

사랑의 앞면에는 넓은 마당을 두었으며 마당의 왼쪽으로 우물과 연못이 조성되어있다

 

사당은 멸실되었던 것을 1983년 도비와 시 군비을 보조받아 복원한 것으로 정면 3칸의 전퇴을 둔 맞배지붕 건물이다

논산 명재 고태그의 가장 높은 위치에는 산문을 두고 담장을 둘러 별도의 공간으로 조영하여다

안채는 높지않는 기단위에 1고주5량의 구조로 사랑채와 거의 같은 양식이다

 

북쪽 중앙에 정면5칸 측면2칸  규모의 대청을 두었고 뒤편 좌우에  각각 고방을 두었으며 

고방앞면에 쌍여닫이 띠살문을 두었다

대청의 서쪽으로 2칸의 안방과 1칸의 윗방을 두었으며 그 남쪽으로 넓은 공간의 부엌을 두었다

부엌의 상부에는 다락을 설치하여다

대청의 동쪽에는 안방보다 작은 면적의 건너방을 2칸 두었으며 그 뒷편으로 윗방을 1칸을 두었다

또한 건너방 남쪽으로 1칸 반의다락이있는 부엌을 두었다

 

안채의 남쪽에 위치한 대문채는 2칸의 중문칸과 서펀의 행랑방 1칸 동편에는 공으로 사용되고있는 

2칸의 방으로구성되어 사랑채와 ㄱ자로 연결된다

대문이 별도로 없는 집의 구조상 중문을  대문으로 겹하되 대문이 열렸을 경우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판자벽을 두어 외부시선을 차단하는 완중장치로 활용하여다

 

사랑채는 정면4칸 측면2칸의 홑치마 팔작지붕으로 오른쪽 앞뒤2칸에 대청을 두었고 

왼쪽 앞뒤 2칸에 누마루을 두었으며 중앙에는 2x2칸의 규모의 온돌방을 만들었으나

앞면은 빈 칸을 안으로 들여 툇마루을 두었다

온돌방 뒤의 빈 칸의 고방이 있으며 누마루 후면으로는 1x2칸의 방이 꾸며져있어 

대문옆의 행랑채와 ㄱ자로 연결되어있다

가구 구조는  공포가 없는 민도리로 퇴고주을 세워 퇴량과 대들보을 걸었으며 

종량위에있는 제형대공에서는  뜬 창방을 볼수있다

 

연못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다~는 천원지방 사상을 형상화한 방지의 형식으로 

내부에 원형의 섬을 조형 하였다

사랑채와 오른쪽으로는 현재 윤증 집안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장류을 

ㅇ품화 하여 지역 특산물로 양산하기 위한 장독대들이 들어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