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먼 훗날의 추억

섬여행

태안 해변길 6코스~샛별길~2022년~9월~13일~화요일~날씨~흐림~ 코스~황포항~쌀썩은 전망대~샛별해변~병술만~리좀 리조트 곰솔림~꽃지해변~

jnju22 2022. 9. 15. 20:37

도착지인 황포 항에 음식점이 없다고  반대로 걷게 되었다

바다을 보면서 걷고 힐링한  하루여다~

황포 항에서 출발한다

물빠진 갯벌이  낣게  펼쳐져 있다

우측으로 가도 되지만 해안길로 간다 

물결무늬가 아름답다

우뚝  산처럼 보이는 것이 망재라 합니다

마타리 꽃이 예쁘네요

쌀 썩은 여 ~라는 토속적인 순스 우리말  이름을 가진 이곳은 세금으로 걷은 쌀을 실은 세곡선이 자주 

암초에 걸려 침몰하는 바람에 대비 책으로 피해 태안쪽의 천수만에서 태안 북쪽 가로림만을 

잇는 운하을 만들기 위해 고려 인종 12년 (1134년)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여려차례 굴포 운하을 뚫고자 시도 하여으나

당시 기술로 는 어려움이 많아  번번히 실패하고 

조선 인조때 이르러 굴포운하는 포기하고 대신 가장 거리가 짧은  안면읍 창기리와 태안군 남면 신온리 사이을 파내는 공사을 성공해 1638년 에 우리나라 최 초의 운하가 완공 되었고 이로 인해 안면도는 육지에서 섬으로 디었다고 한다

이때 부터 섬의 이름을 안면도라고 브르게 되었다는데 그 연유는 더 이상 세곡선이 암초에[ 부딪처 좌초할 염려가 없으니

편안하게 잠잘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는~물이 들면 바다고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되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전망대에서 담은 망재 ~뒤로는 고군산도 라 합니다

샛별해변 ~샛별해변은 안면도 서부 해안 중간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는 갯벌지역 이였는데 

100여년 전쯤  간척사업으로 벌판이 되었고 이름도 새벌 또는 샛벌 이라고  점점 샛별로 바뀌여다고 한다

이곳 신야리라는 동네 이름도 새벌이라는  순 우리말을  한문 투로바꾼 이름이라고한다

앞에 보이는 섬이 외도이고 오른쪽에 희미한 섬이 내파수도 라고 한다

샛별 해수욕장은 약 10년 전쯤  물과 모래가 많다고 소문 나면서 태안군으로 부터 공식적으로 해수 욕장 으로 인정 받아다고 합니다

바닷가 바위들이 아름답습니다

바위 굴안 에서 바다 방향을 담아봅니다  와~멋집니다

물이 빠진 바다길이  바위가 삐죽합니다

줄밭머리는 이곳 마을 이름으로 다른말 로 하면 부추밭마을 입구라는 뜻이라 합니다

논에  벼 사이로 피어난  꽃  예쁩니다  보라색이 

소나무 숲길을 지나 병술만으로 갑니다

병술만 해변 

 

병술만 바다해변을 돌아 봅니다~

병술만이 끝나때 쯤  산길로 잠시 가는데 케이트의 머리에 샛별길 6코스라고 적혀있다

병술만에서 꽃지해변으로 가는  숲길 

우측으로 가도 되지만 우리는 바다길로 간다 

리솜 리조트 앞  꽃지 해변 

 

우측 산길로 오면 여기로 내려온다 

꽃지 해변  아름답 습니다

우측  할미 바위 좌측 할아비 바위

꽃지 해수욕장 앞 바다에 있는 <할미 할아비 바위> 유래을 살펴 보면 

통일 신라의 제 42대 흥덕왕(826~836년)때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에 진을 치고 대사가 되어 해상권을 장강 하면서

서해안의 중심지인 안면도 (견승포)에 전략을 전진 기지을 설치하게 되었다

이 기지의 책임자로 승언 장군이 파견 되었는데   승언장군은 부하들을  친형제 처럼 아끼고 사랑으로 

다스리니 모두 사기가 하늘에 닿았다   (할아비 바위)

(할미 바위)

할아비 바위 할미 바위 배경으로 

할아비 바위 배경으로 

또한 승언 장군에게는 아름다운 <미도>라는 부인이 있어는데  부부간의 금술이 아주 좋아으며 

부부의 사랑은 나날이 더욱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승언 장군에게 궁복(장보고)으로 부터 급히 군선 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전장으로 떠나는 승언 장군은 사랑하는 아내와 기약없는 작별인사을 하고 나눈뒤 군선을 이끌고 북쪽으로 향진 하였다

그 후 여러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초조해진 미도 부인은  바닷가 높은 바위에 올라가  비가 오나 뉸이오나

바람이 부나  일편단심으로 남편이 돌아 오기을 애타게 기다렸으나 장군은 영영 돌아 오지 않았다

그래도 미도 부인은 포기하지 않고 밤낮으로 수 십년을 기다리다 마침내  이 바위에서 죽 고 말았다

그뒤 이바위을 할미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며  그 후 어느 날 밤 갑자기  폭풍후가 휘몰아 치고 

천둥소리가 하늘을 깨는듯 하더니  할미바위 옆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았는데 이를 할아비 바위라 부르게 되었다